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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보 <대한민국의 태권도에 대해>

by hyewisdom 2025. 2. 11.

태권도(跆拳道)는 맨손 방어와 발차기 기술이 특징인 무술로, 20세기 후반 공수도 수련인 등을 필두로 대한민국에서 형성되고 발전하였다. 오늘날 태권도는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이자 「전통무예진흥법」에 따른 전통무예로 지정되어 있다.

 

무예스포츠로서의 태권도는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2000년 하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역사 1945년 광복을 전후해 대한민국에 여러 개의 무술 도장이 생기게 된다. 그 중 소위 '5대관'(청도관, 송무관, 무덕관, 지도관, 창무관)이 가장 유명하였는데, 이 도장들이 분화하여 생긴 9개관이 1960년대에 합쳐져서 현대 태권도의 모체가 된다. 특히 영향력이 강했던 도장은 청도관과 무덕관으로, 최초의 태권도장인 청도관은 이원국에 의해 설립되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 대학을 다니면서 근대 가라테의 아버지 후나코시 기친에게 송도관 가라테를 배웠다. 본인은 오키나와 무술로도 생각한듯. 중국에서는 쿵푸를 수련했다는 말도 있다. 다만 도장의 수련 스타일은 가라테 도장이었다. 이후 이원국은 본인을 한국 태권도 창시주로 지칭하기도 했다. 당시 최대의 태권도장이던 무덕관(1953년과 1970년 사이에 전체 태권도 수련자의 약 75%가 무덕관에서 배웠다)은 황기에 의해서 설립됐는데, 그는 어릴 때 택견을 배우고중국에서 태극권과 쿵푸를 배웠다고 전한다. (다만 자료 부족으로 그의 경력이 의심받기도 한다. 그리고 장단출신인 황기가 서울 무술인 택견을 실제로 알고있는지도 의문이며 나중가서는 택견은 형이 없어 무술도 아니라는식으로 비판한적이 있다.) 가라테는 직접 배운 적은 없고 책을 읽은 적은 있다.황기는 전통무예에 관심이 많아 당수도로 시작했던 도장 명칭을 이후 화수도, 수박도 등으로 바꾸고 본인 주장대로라면 전통무예 수박에 영감을 얻어 본인의 창작무술 수박도를 창안하기도 하나, 태권도 통합 과정에 가장 소극적인 편이라 제자들과도 불화를 겪다 결국 무덕관에서 제명당하고 만다. 나머지 도장들도 주로 가라테 베이스 도장이 많았다. 한편 군 장성이었던 최홍희는 민간도장과는 연이 없었으나, 청도관 출신 인사들이 많던 군대내 도장 오도관을 창립하고 초대관장이 된다. 그는 어려서 택견을 배웠다는 말도 있고, 일본 중앙대학을 다니면서 가라테를 배운 뒤, 군에서 복무하며 군대격투기로 가라테를 지도하였다. 1954년 그의 부대를 시찰한 이승만이 일종의 변형 가라테 시범을 관람한 후 택견으로 착각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최홍희는 택견과 비슷한 단어를 찾다 태권에 도를 합하여 태권도라는 명칭을 창안했다. 1953년 제29보병사단장이 된 그는 부대명을 태권도부대라 명명하고 경례구호도 태권이라 한다. 1959년 처음 대한태권도협회가 만들어졌고,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이 만들어져 최홍희가 총재로 취임한다. 1972년 최홍희가 정권과 갈등을 빚다 캐나다로 망명하며 ITF 본거지를 토론토로 옮기자, 대한태권도협회를 중심으로 새로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창립하여 태권도 보급에 나선다. 1973년에는 국기원이 건립되었다. ITF는 북미권에서 인지도를 얻다 1980년대 이후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에 태권도를 중심적으로 보급하며, WTF와 함께 세계 태권도계를 양분하게 된다. 2007년 기준으로 WTF에는 18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되었고, 약 680여만 명의 유단자가 배출되었으며[5], ITF에는 2007년 기준으로 102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